날씨 : 오전에 흐리고 오후 4시이후 한 두차례 비
산행코스 : 새재 - 1315봉 - 국골사거리 - 하봉 - 하봉 헬기장 - 치밭목 대피소 - 대원사 - 매표소
도상거리 : 약 16.7 km
실거리 : 약 18km
등반시간 : 약 9시간
지형도:
새벽 4시 아이들을 흔들어 잠을 깨운다.
6학년 석경이가 먼저 일어나고, 4학년 소연이는 엉덩이만 들고 잠 뿌리와 한참을 실갱이 하고 나서 겨우 일어난다.
성서 홈플러스로 가는 길 아내가 운전하는 차 안에서 김밥과 삶은 계란으로 간단히 요기를 마칠무렵
K2 전세 버스가 보이고 선봉대장님과 낮익은 동행들이 먼저 와 계신다.
버스가 산청군 가까이 달릴 무렵 차창에 빗방울이 맺히고 멀리 보이는 지리산 중턱에는 동양화 속 풍경처럼 산허리 여기저기 하얀 비구름이 보인다.
싱그런 5월, 촉촉한 봄비 속에 산행이라......
영화나 소설처럼 차 안에 앉아 있는 관찰자 입장인 지금은 한 줄기 낭만도 살포시 스쳐가지만 잠시 후면 해발 1781m를 산행 해야 할 주인공이다.
게다가 왼쪽 팔 골절상으로 한 쪽 팔을 목에 걸고 걸어야 하는 석경이와 10차 대원 중 최 연소자 소연이를 같이 데리고 나선 산행이라 내심 걱정이 앞선다.
버스가 주차장에 도착할 무렵 다행히 비는 그치고 구름 낀 날씨는 오히려 산행하기에 좋을 듯 하였다.
주차장에서 새재 산장까지는 소형 버스와 현지에서 대기시켜 놓은 1t 화물차량을 이용하여 이동 하였다.

새재 산장에서 화장실을 다녀온 후 드디어 본격적인 등산이다.
그런데 앞서가는 대원들이 길이 아닌 숲 속으로 마치 빨려 들어가 듯이 속속사라지는게 아닌가 ,
약간 의아한 마음이 들었지만 확실한 길을 모르는 나도 뒤를 따랐다.
아마도 이번 산행도 탐방 금지 구역이어서 가지말라는 곳을 굳이 가야만 하는 사람들의 수고로운 댓가로 생각하면서......
지난 번 하산 지점 이었던 새재까지 접속 구간 약 20분 거리는 빽빽한 산죽사이를 마치 군인들이 무슨 작전 수행하 듯이 움직였다.
그러고 보면 지리산 일대가 6.25전쟁 때 피·아간에 밤 낮없는 혈투가 벌어졌던 곳 아닌가?
전쟁 중에 쫒고 쫒기는 자의 목숨을 건 추격전을 오늘에 비교하기엔 지나친 비약 이겠지만 무대가 동일한 장소여서 잠시 착각에 빠져본다.
이마에 땀이 송글송글 맺히고 체온이 올라갈 쯤 새재에 도착하여 물 한 모금 마시고 주위를 둘러보니
여기 저기 고사리가 쏙쏙 돋아나 있었다.
아주머니 몇 분은 고사리를 꺽고 산나물을 채취하셨다.
새재에서 1315봉을 향한 첫 오름은 상당히 가파른 오르막의 연속이다.
봄나물의 대명사 격인 두릅, 고사리를 보면서 시골에서 자란 어린 시절을 잠시 회상해 본다.
어머니는 동네 아낙들과 산에 가서 고사리랑 산나물을 채취 해 오셨고, 할머니는 그것들을 삶아 햇볕에 잘 말려서 5일장에 내다 팔아서 찬거리랑 생필품을 사오셨다.
어쩌다 깜장 고무신이라도 한 켤레 사다주시면 밤새 머리맡에 두고 빨리 날 새기를 기다리던 생각이 난다.
아이들에게 어린시절의 추억을 들려 주면서 걷다보니 시야가 시원하게 확 트인다.

앞섰던 일행이 1315봉이라고 했다. 준비 해 간 오이를 꺼내서 반 토막씩 잘라 먹고 사진도 찍으며 한숨 돌려본다.
좌측 계곡 건너 정상 부근이 흰구름 속에 가려진 봉우리를 감상하면서 국골 사거리 방향으로 가는 마루금은 봄과 겨울을 선으로 그어 표시 해 놓은 듯 지표면 가까이에는 연초록 식물들과 작은 꽃들이 앞다투어 피어나는데 하늘 가까이 나뭇가지는 아직 앙상한 나목 그대로다.

아마도 지리산의 봄은 땅 속에서 먼저 오는가 보다.
수채화를 그릴 때는 스케치를 한다음 하늘색 부터 먼저 채색을 하고 차츰 앞쪽으로 내려 오면서 색조를 입혀 가는데 대자연은 지표면 부터 연초록색을 대범하게 한 줄 좍- 그어 놓았다.
이러한 놀라움이 인간과 대자연의 차이가 아닐까?
인간은 결코 가질 수 없는 창조적 매력에 끌려 사람들은 산으로 계곡으로 자꾸만 빨려들어 가는 것이리라.
평탄한 오솔길 같은 산죽 사이를 몇 번 지나고 나서 암벽을 만났다. 대간 시작 후 처음 만나는 암벽이다.
로프는 있었지만 한 쪽 손을 사용하지 못 하는 석경이 에겐 난감했다. 팔꿈치와 무릎 엉덩이 등 온 몸을 적절히 사용하면서 기어 오르다 시피 하면서 가까스로 통과했다.
고도가 높아질 수록 차츰 풍경이 달라진다. 우선 아름드리 전나무와 자작나무 군락 여기 저기에 전나무 고사목들이 통채로 쓰러져 썩어가는 모습들 이랑 새재 부근에는 이미 사그라진 얼레지 꽃들이 지천에 피었다.
얼레지 꽃은 제 1 구간 초입 부터 동행이었다!
국골 사거리를 지나 하봉으로 향하던 중간 쯤에서 점심을 먹기 위해 베낭을 풀어보니 있어야 할게 없네.
밥이랑 삶은 고기, 야채는 있는데 김치랑 된장이 없었다.
하는 수 없이 그냥 맨 밥을 먹고 있는데 옆에서 식사를 하시던 미남 대원 두분께서 김치랑 생선 통조림을 나누어 주셔서 고맙게 잘먹었다.
두류봉 정상에 선다.
활 시위 처럼 팽팽했던 일상 에서의 긴장감, 피곤함 들을 모아모아 한방에 날려 보내고 돌아서니 아찔한 직벽의 암릉이 있었다.
튼튼하게 묶여 있는 로프와 집에서 준비해 간 로프를 이용하여 조심스럽게 아이들을 내려 보내는데 많은 시간을 소비했지만 무사히 통과해서 다행이었다.
정상 표지석이 없는 하봉을 긴가민가 하면서 지나치고 헬기장에서 숨 고르기를 할 무렵, 멀리서 천둥소리가 들려왔다.
K2 → 안내에 따라 치밭목 방향으로 하산 하는 길은 예상치 못했던 복병이었다.
크고 작은 호박돌이 끝없이 이어진 내리막 길이라 아이들에겐 무척 조심 스럽다.
혹시 발을 헛디뎌 넘어질세라 바윗돌을 헤아리 듯이 조심조심 내려오다 보니 어느새 후미 대장님이 뒤에 와 계셨다.
설마 우리가 꼴찌일까 싶어 여쭈어 보니 꼴찌란다.
지루하게 계속 이어진 돌길을 이제나 저제나 하며 치밭목에 다다를 무렵 비가 내리기 시작하여 급하게 우의를 꺼내 입고 보니 후미 대장님은 우의를 못 가져 오셔서 그냥 비를 맞고 계셨다.

온 몸으로 비를 맞으며 책임감때문에 앞 서 가지도 못하고 싫은 기색도 없이 든든하게 뒤를 지켜주시니
미안하고 고맙고 난감하고......
무제치기 푹포는 볼 생각도 못하고 서둘러 내려오는 길 5시쯤 지나자 어두워 질 기미가 보여 아이들을 재촉하여 쉬지 않고 내려오는 길에 활짝 핀 금낭화 군락은 잔잔한 감동 그 자체였다.
지루하던 돌길이 끝나고 흙길이 나오면서 뛰다시피 하여 앞서 가던 일행들과 같이 내려올 수 있었다.
유평리에서 차량을 기다릴 때 발견한 커다란 달팽이 두마리는 지친 아이들에겐 커다란 선물이었다.
2차구간에 이어 이번 구간은 골절상으로 불편한 석경이 때문에 안전을 최우선으로 생각한 산행 이었는데 무사히 마칠 수 있어서 다행이었고, 격려해 주시고 도움주신 여러 대원님들께 머리숙여 감사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