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거리785km(웅석봉-진부령)
남은거리:729.4 km(벽소령-진부령 )
산행코스: 백두대간 5구간 - 백무동 - 장터목 -세석 - 벽소령 - 삼정 의신마을
등반거리 : 약21km
일시 : 2007년 6월 3일
등반시간 : 약 10시간
지형도:

고도표:
날씨 : 오전 - 꾸중 듣는 아이 얼굴, 오후 - 칭찬 듣는 아이 얼굴
K2애마가 화원을 지나 88고속도로에 진입하면서 부터 차창 밖으로 보이는 들판은 모내기가 막바지에 접어 든 듯 네모난 호수 같다.
오늘의 접속구간 백무동 초입부터 가파른 너덜바위길이다.
지난밤에 한줄기 소나기라도 지나간 듯 바위에 물기가 촉촉하여 조심해야 할 듯 하다.
백명의 무당이 배출되었다 하여 백무동이라는 설과 하얀 안개가 끼는 골이라 해서 백무동이라는 설이 전해지는 골짜기에 흐린 날씨와 안개가 겹쳐 숲속은 으스름한 저녁 무렵을 연상케 한다.
습도가 높고 제법 가파른 오름길을 쉬지 않고 걸었더니 하동바위가 보일 부렵엔 등줄기에 땀이 후줄근히 흘러내리고 이마를 닦던 손수건도 촉촉히 젖어 버렸다.
하동바위 아래서 목을 축이고 석경이와 소연이에게 하동바위에 얽힌 2가지 전설을 들려주고 쇠로만든 출렁다리를 건너니 등산로한켠에 순백의 함박꽃이 수줍게 반긴다.
부끄러워 활짝 피지도 못하고 살며시 반쯤 꽃잎을 열고 나뭇잎 사이로 빠꼼히 내다보고 있는 함박꽃을 가만히 보고있노라니 꽃송이 속에 어린시절 고향이 보이네.


고향의 미나리밭 밭둑에 커다란 함박꽃 나무가 있었다.
모내기 할 때 쯤 미나리 밭에 가면 하이얀 함박꽃이 봄볕을 농락하고 있었다.
일찍핀 꽆들은 미나리 위에 뚝뚝 떨어져 빛이 바래가고 아직 못다핀 꽃봉오리는 터질듯 맑고 깨끗해서 초록색 미나리와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었다.
잠시 고향 생각에 가파른 너덜바위길을 힘든줄 모르고 오르다 보니 수직벽의 망바위가 앞을 막아서고 앞서간 일행과 하산 하는 등산객이 모여서 쉬고 있다.
잠시 쉬어 갈까 했는데 비집고 들어갈 공간이 부족하여 망바위에 눈도장 만 찍고 지나쳐 갔다.
망바위를 지나면서 부터는 산길이 한결 순탄해 지고 고도가 높아지면서 바람도 적당히 불어 산행 속도를 조금 높일 수 있었다.
붉은 병꽃과 철쭉꽃이 간간히 피어있는 숲길로 걸으며 석경이와 소연이 한테 오늘의 임무를 부여했다.
아이들이 숫기가 없고 부끄러움이 많아 인사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어른들이 칭찬이나 격려를 하면서 음식을 나누어 주어도 고맙다는 표현을 하지 못해서 민망한 적이 많았다.
오늘은 마음먹고 상금 일만 냥과 하산 뒤 맛있는것까지 사주겠다고 하면서 구슬리고 달랬더니 소연이가 몇 번 망설임 끝에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안녕하세요"라며 내려오는 등산객에게 인사를 건냈다.
다행히 첫 시도가 반응이 좋아서 상대방 아저씨가 크게 반기시며 사탕까지 나누어 주셨다.
용기를 얻어 차츰 목소리를 높여서 하산 하는 사람마다 일일이 인사를 건내니까 칭찬이 쏟아진다.
많은 칭찬과 격려 덕에 인사하는데 재미를 붙이게 되었고 이 점은 대간 시작 후 첫 수확이었기에 무척 행복했다.
마주 오는 등산객과 인사를 주고 받으며 장터목에 도착하니 바람이 몰아치고 자욱한 가스가 마루금을 뒤덮고 있었다.
천왕봉을 비롯한 주변 산세를 조망할 수 없어 안타까워 하며 연하봉 방향으로 발길을 돌린다.
멀리 볼 수 없으니 가까이 있는 야생화에 눈길이 갔다.
제1 구간부터 천왕봉까지 동행했던 얼레지 꽃은 자취를 감춰버렸고, 통실한 삼각주머니 모양의 씨방을 매달고 있었다.
세차게 몰아치는 바람에 여린풀이 눞고 바윗돌은 웅크린 채 동면하는 곰처럼 엎드려 미동도 하지 않는다.
연하봉에 오를즈음 바람이 잦아들고 멀리 천왕봉이 흰구름 모자를 깊게 눌러쓰고 뒤를 지켜주고 있었다.
바람이 잦아든 때를 맞추어 연하봉에서 조금 이른 점심을 먹고 삼신봉에서 숨 한 번 가다듬고 촛대봉에 오르니 파란하늘이 드러나고 풍만한 반야봉과 부드러운 세석평전 품 사이에 세석산장이 납죽이 업드려 오가는 등산객을 맞이하고 있다.
부드럽고 포근한 세석평전에 애틋하고 슬픈 전설이 전해져 온다고 한다.
아득한 옛날 지리산 자락에 '호야'라는 청년과 영신이라는 아씨가 사랑하며 살고 있었는데 그들에겐
불행하게도 간절히 원하는 자식이 없어 고민하고 있었단다.
어느날 반달곰이 영신에게 영신봉 음양수를 먹으면 소원성취할 수 있다고 알려 주었고, 영신은 산신령 의 금기를 무시하고 몰래 음양수를 마셨다.
그러나 이 사실을 알게된 호랑이가 산신령에게 고해 바치고 영신은 벌을 받게 된다.
"너는 세석 평전에서 평생 철쭉꽃을 가꾸도록 하라"
그리하여 남편과 헤어진 여인은 슬픔을 머금은 채 열손가락에 피가나도록 철쭉꽃을 가꾸었단다.
여인의 열 손가락 빨간피가 묻은 철쭉꽃은 애처롭고 아름다움을 간직한채
세석평전을 붉게 물들인다고 한다.
낙남 정백이 분기하는 영신봉에서 일곱 선녀 전설의 칠선봉을 향하는 길에선 청명한 하늘이 열리고 계곡마다 겹겹이 뻗어내린 지리산 연봉들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져 어디한 곳 모자라거나 기울어 짐이 없이 저마다의 독특한 기세와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숲속에선 이따금 다람쥐가 숨바꼭질을 하듯이 날렵하게 뛰어다니고
산새들은 구상나무 꼭대기에 앉아서 한껏 가다듬은 목청으로 6월의 지리산을 노래하고
야생화들은 청초한 듯 곱디고운 빛깔로 하늘하늘 손짓하니
취한 듯 홀린 듯 지리산에 6월은 아찔한 현기증이 난다
칠선봉에 이르러 일곱 선녀의 전설을 담고 둘러선 암릉들에 또 한 번 넊을 놓고
마루금으로 이어지는 외길을 따라 덕평봉에서 왼쪽으로 내려서다 만난 선비샘에서 한바가지 물을 쭈욱 들이키니 귀가 열리고 눈이 트인다.
아이들에게 선비샘에 얽힌 전설을 들려주니까 재미있어 하면서도
지리산엔 왠 전설이 이렇게 많으냐고 반문한다.
영호남 800여 리 3개 도 5개 시군에 걸쳐 겹겹이 뻗쳐있는 지리산에 어찌 전설이 많지 않을수 있으랴.
민중들의 삶과 애환이 사무치고 농축되어 승화될 것이 전설일진데
어찌 전설의 많고 적음을 숫자로 가늠하랴.
민중의 노래는 맑은 계류에 녹아 내려 물길가 듯 이어질 것이다.
달빛이 아름다워 지리산 제 5경으로 꼽히는 벽소령에서 쉼표 하나 찍고 삼정 방향으로 몇 걸음 내려서니 가파른 너덜바위 길에 정신이 번쩍든다.
벽소령까지 걸어 오며 바주치는 사람마다 "안녕하세요"라는 한가지 인사만 200여 번은 넘게 졸졸외워 대던 소연이가 한풀꺽인 표정으로 조심스럽게 발걸음을 옮긴다.
한 걸음 한 걸음 너덜바위 지대를 내려가는 아이들을 보며 작은 바램 하나를 한박꽃 꽃송이 옆에 달아본다.
'이 아이들이 자라면서 도움 받았던 일들을 가벼이 흘려 보내지 않고 훗날 더 많은 사랑으로 베풀고 아름다운 것을 보면 가슴으로 느끼고 열정과 따사로움을 지니게 해 달라고......'
맑게 흐르는 계곡 옆에 메어진 로프를 타고 한 층대를 내려서니 평탄한 임도가 반긴다.
호젓한 임도를 옆으로 하얀 찔레꽃이 향긋한 향기를 뿌려놓아 지쳐가던 발걸음을 한 번 추스리고 진보라빛 엉겅퀴꽃에서 할머니 얼굴을 찾아본다.
어린 시절 할머니 말씀에 엉겅퀴 꽃이 피고 뻐꾸기가 울면 봄이 달아난다고 하셨는데
엉겅퀴 꽃이 까칠한 잎사귀로 지리산의 봄을 내쫒고 있구나.
삼정마을로 내려서기 직전에 넓다란 풀밭 위에 앞서 가셨던 일행이 빙 둘러 앉아
휴식을 취하며 무엇인가 먹고 계셨다.
언듯 보기에는 쑥떡 같은데 산나물과 찹쌀을 섞어서 만든 떡이라고 한다.
먹어보니 아주 찰지고 향긋한게 맛이 일품이다.
떡을 미처 다 먹지도 못했는데 마을 입구에서
"k2 차타고 가실분 빨리 내려 오세요"
라는 선봉 대장님의 목소리가 들려서 반가운 마음에 떡을 나눠주신 분께 고맙다는 인사도 못드리고 벌떡일어나 달려가니 화물차량에 벌써 몇 분이 타고 계셨다.
적재함이 꽉차도록 비좁게 타고 내리막 길을 내달리다 보니 메트로 홍님과 몇 분이 걸어가고 계셨는데 그 중 여성대원은 겨우 비집고 태웠으나 남자 분들은 도저히 자리가 없어서 그냥 출발한다.
의신 마을에 도착 지리산 계곡에서 내려오는 개울에 발을 담그니
장딴지를 타고 내려온 고단함이 바위를 돌아 아래로 아래로 흘러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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