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시:2008년3월2일 당일산행
총거리:웅석봉-진부령(785km)
걸어온길:웅석봉-배너미재(338.85km)
남은거리:배너미재-진부령(446.15km)
도상거리:약15.5km
실거리:약18km(접속포함)
등반시간:약 9시간 40분
날씨:흐림
지형도
고도표
지독한 독감에 걸려 5일동안 골골고리다 속옷이 땀에 푹 젖은채 일어나 컨디션 점검부터 한다.
백두대간 종주 시작한 지 일년이 지나고 있건만 감기따위에 발목잡혀 버벅대는 자신이
한심스럽고 못마땅하다.
입맛도 쓰고 기운이 없어 꿀물에 미숫가루 한 대접 타서 마시고 감기약을 먹는다.
가다가 도저히 힘들면 중간탈출 하는 일이 있더라도 일단은 출발하자 싶어 베낭을
짊어진다.
오늘따라 유난히 빈 자리가 많아 보인다.
모두들 감기에 걸리신 걸까?
8:08
버리미기재에서 철망을 우회하며 첫 걸음 부터 위법을 하면서 산행이 시작된다.
장성봉에 오르기 위해선 약 1시간정도 지속적인 오름이 이어진다.
코가 마히고 허파꽈리가 제 역할을 다 못하니 쉽게 호흡이 가빠지고 답답하며 영 기운이
나질 않는다.
9:07
등줄기가 후줄근하게 땀 범벅이 되다시피하여 장성봉 표지석을 짚고선다.
약간흐린 날씨이긴하지만 그런대로 조망을 즐길 수 있어서 다행이다.
곰넘이 봉을 비롯하여 지난구간에 지나온 마루금과 산천은 아직 여전히 설국의 풍경이다.
장성봉에서 둘러보는 풍광중 유난히 희양산이 돋보인다.
언뜻보기에는 골짜기 하나건너면 다다를듯 하지만 그리쉽게 접근을 허용하질 않는다.
적어도 한나절쯤은 발품을 팔며 정성을 기울어야만 품안에 들 수 있다.
마루금은 10시방향으로 크게 꺽이며 2시 방향의 희양산을 외면하듯 멀어진다.
버리미기 재에서 시작한 장성봉 남사면엔 눈이녹아 있었지만 내리막 서북사면엔 아이젠을 착용해야만 한다.
이번구간 역시 냉,온탕을 오가듯 눈길과 낙옆쌓인곳을 반복해서 걸어야 한다.
살구나무골 삼거리 까지 비교적 순탄하게 이어지던 마루금은 악휘봉 삼거리를 앞두고 고도를 높여가며 돌층계 같은 암릉을 만나지만 그다지 어려우 구간은 아니다.
흐릿하던 날씨가 눈을 뿌리기 시작한다.
비나 눈이 온다는 예보가 있었는데 눈이오는걸 보니 산이라는지형때문이리라.
많은 눈은 아니여서 그냥 맞으며 분위기잡고 걸어본다.
11:15
약휘봉 삼거리에 이를무렵부터 뾰족한 악휘봉정상에 오른 산우들의 모습이 보인다.
왕복 20여분 거리를 두고 포기해야만 하는 몸상태가 한심스러워 그저 먼 발치에서 눈 인사로 대신한다.
악휘봉 삼거리를 기점으로 마루금은 다시 3시 방향으로 크게 꺽이며 희양산 방향으로 향하게 된다.
약간의 오르내림은 있으나 은치재를 향해서 서서히 낮아지는 구간이 이어지며 이따금씩 앞이 확트일 정도의 전망이 좋은 곳도 만날 수 있다.
하지만 전망이 좋은 장소의 대부분은 아찔한 암릉구간으로 이어지기에 안전사고에 대비해야한다.
12:19
은치재를 지나면서 이번구간 산행거리 약 18km중 10km정도르 왔으니 절반은 넘어왔다고 생각되지만 돌이켜보면 이제부터 산행다운 산행의 시작이라고 보면 될 것 같다.
은치재엔 봉암사에서 설치한 목책이 설치되어 있고 부드러운 어투속에 장중하게 타이르느 글귀가 적혀 있다.
목책옆을 지나고 울창한 참나무 숲을 텁벅터벅 오르며 오늘따라 발걸음도 무겁고 이방인이 된 느낌이다.
683봉에서 잠시 주춤했던 마루금은 구왕봉을 만나며 생각보다는 많은 에너지를 소비해야 한다.
어쩌면 봉암사 고승들께서 가지 말라는 말을 무시하고 미련하게 산에오르는 중생의 발걸음을 무겁게 하는건 아닌지 모르겠다.
13:50
구왕봉 안부에서 산중파티중인 폭주산우님들과 세번째 만남이다.
폭주족 답게 막장봉, 악휘봉을 두루거치고 오는길에 몇번을 스치고 지나가시더니 푸짐한 잔치집을 연상케하는 현장이다.
잠시 합석하여 과일이랑 곡차한잔 하고 떠난다.
언제나 부지런히 이산저산 넘나들고 잘 먹고 재미있고 산행의 즐거움을 누구보다 많이 누리시는 팀같아 보기좋고 부러울 때도 있다.
13:59
구왕봉(九王峰877)은 구룡봉이라 불리기도 했는데 지증대사(智證大師)가 봉암사를 창건할 당시 주춧돌이 들어설 연못에 살고 있던 9마리 용들을 신통력으로 몰아내자 그 용들이 새롭게 터전을 잡은 봉우리라고 해서 구룡봉이라 했다한다.
희양산에 올라 구왕봉을 눈여겨 보면 생김새가 이름에 걸맞게 상당히 빼어난 암봉임을
알 수 있다.
특히 용암봉곡 방향과 희양산을 대면하고 있는 방향의 수려한 암벽과 청솔의 조화는 9마리 용들이 꿈틀거리는 듯 생동감이 넘치지만 희양산의 명성에는 감히 미치지 못하여 뒷전으로 밀려나 시선을 끌지 못하는 면이 있다.
구왕봉에서 지름티재로 내려서는 길엔 빼어난 명산 희양산을 감상하는 즐거움도 있지만 , 곳곳에 암벽과 로프구간이있어 안전한 산행을 위해선 신경을 바짝 써야만 한다.
두어군데 로프는 설치한 지 오래되고 햇볕에 오래 노출되어 로프를 잡은 장갑에 부스러기가 뽀얗게 묻어나는 걸로 보아 안전을 위해선 교체해야 할 것 같았다.
14:37
가은과 연풍을 연결하는 지름길이었던 지름티 재에는 신작로가 생겨나기전 이 고개를 넘나들며 치성을 올리던 서낭당 모습이 남아있어 그때의 모습을 상상케한다.
지름티 재에서 희양산을 오르기 위해서는 봉암사에서 설치해 놓은 목책을 넘어야 한다.
불교계의 정신적 요람이요 생명수처럼 소중히 여기는 공간을 확보하고 오로지 참선과 정진에만 몰두하기 위하여 접근을 금하고자 불가피하게 설치한 목책이라고 한다.
의도와 뜻을 모르는 바는 아니지만 전국에서 나름의 꿈과 의지를 가지고 장엄한 의식을 치루듯이 자신과의 끝없는 승부를 겨루며 백두대간 대장정에 돌입한 중생들은 이길을 지나야만하니 어쩌면 좋단 말인가?
길이라기 보다는 백두대간 마루금이기에 백두대간 마루금을 체계적으로 밟아보자고 나선 사람들은 당연히 이곳을 지나고자 하는 것이다.
백두대간 마루금이 아닌 다른곳으로 돌아서 갈 심산이었다면 대야산 암벽에서 목숨걸고 외줄타기하는 어리석은 짓을 하지 않았을 것이며 애초에 출발조차 하지 않았을 것이다.
물길을 막는 댐공사를 할 때도 물고기가 올라갈 수 있는 어로를만들어 주고 산맥의 줄기를 잘라서 도로를 만들때에도 야생동물의 이동통로를 만들어주는 시대이다.
이제는 현실적인 대안이 나와야 할때이다.
상호존재의 가치와 이상을 존중하고 타협하는 마음을 바탕으로 공존의 길을 모색해야한다.
비단 이곳뿐만아니라 지리산 속리산 국립공원이 그러하였고 또 앞으로 만나게 될 통행금지 구간에서 대간돌이들은 산에 오르는 일이 범법자가 되는 길이기를 원치 않으며 더구나 어린자식 들에게 철망을 넘고 개구멍을 통과하는 일을 시키고 싶진 않다.
14:50
희양산 중턱 바람같이 활짝 열린곳에 집채보다 큰 바위와 인심좋은 노송이 두팔을 벌린채 쉬어가길 권한다.
막바지 된비알 로프구간을 앞두고 이보다 더 편안하고 원기충전을 주는 쉼터는 없을 것이다.
호박떡과 초콜릿으로 에너지를 보충하고 줄지어 된 비알에 오른다.
15:20
아득히 쳐다보이는 암벽위에 김대장님께서 마중을 나오시고 산우들은 한 사람 두사람 외줄을 타고 오른다.
힘주어 꼭 잡은 두팔과 팽팽하게 당겨진 로프는 퉁기면 거문고 소리라도 날 것 처럼 긴장되고...
내삶의 무게를 둥기둥 거문고가락에 띄워놓고 희양산 묏부리에 홀연히 서 본다.
태고의 신비를 간직한 암릉과 노송의 조화를 바탕으로 솟아오른 자태는 경외심 마저 일게한다.
수려한 암봉에서 흘러내린 푸른 솔 숲은 용암봉곡을 감고 흐르다 봉암사를 품어안고 머물러 앉았다.
봉암사는 지증대사에 의해 창건되어 1600여년을 불교계의 백두대간처럼 존재해 오다 해방후 성철스님을 비롯한 20여명으 선승들이 참불교 진흥을 위해 "오직부처님 법대로만 살자"라는 기치아래 "봉암사 결사"를 단행했던 구도정신이 서려있는 곳으로 불교계에선 생명수와 같은 도량이다.
1982년 6월 조계종의 특별수도원으로 지정되어 연중중생들의 출입을 통제하고 부처님오신날 하루만 개방한다.
개인적으로 중학교 시절 추억이 깃든곳이기도 하다.
가을소풍때 봉암사 좌측용암봉곡 옥석대 주변에서 보물찾기를 할 때 선생님께서 숨겨놓은 보물은 찾지않고 대자연이 숨겨놓은 송이버섯 산더덕을 찾아 숲속을 뒤지던 기억이 있다.
옥석대주변의 비경은 오랜시간이 흐른지금도 눈에선한 선경이다.
16:20
희양산 암봉을 뒤로하고 배너미재를 향해 발걸음을 옮기다 보면 키작은 산죽을 호위하고있는 성터를 만나게 된다.
마루금 좌측으로 급경사를 이루는 지형을 이용하여 길게 이어진 석축은 지형지물을 이용한 성벽축조술의 지혜를 엿볼 수 있다.
15:59
하늘을 향해 총총히 치솟은 낙엽송숲이 조성된 배너미재에서 마루금 이어가기를 중단하고 좌측 계곡아래 연풍면 은티마을방향으로 내려선다.
내리막 참나무 숲에는 해동의 복병이 도사리고 있었다.
가파른 경사면을 따라 좌우로 방향을 전환하며 이어지는 질퍽한 흙길은 꽤나 미끄럽고 조심스러웠으며 특히나 살짝녹은 진흙아래 숨겨진 맨질맨질한 얼음은 조심해야할 복병중의 복병이다.
17:55
은티마을 증간쯤 다리건너 커다란 전나무 아래 주막집은 대간군들에겐 참새와 방앗간 같은 존재인 것같다.
주막 바깥쪽 벽이나 안쪽공간이나 반반한 빈자리가 없을 정도로 빼곡히 시그날 들이 매달려있었다.
하산주를 먹을 몸상태가 못되어서 흥겨운 하산주 파티에는 참석치 않고 석경이 녀석과 5천원짜리 두부한 모를 청하여 시장기를 달랜다.
이번구간 산행은 희양산 이라는걸출한 명산을 탐방한다는 기대감과 중학시절 추억이 깃든곳을 바라 볼 수 있다는 기대감으로 백두대간 시작부터 내심 기다려온 구간이었는데 감기로 인한 컨디션 난조로 무척이나 힘든 하루였다.
기회가 된다면 한번 쯤 더 와고픈 구간이기도 하다.
그러고보면 어느구간이 더 힘들고 어느구간은 수월할까 가늠하기 보다는 자신과의 싸움에서 실패하여 몸상태가 좋지않을때 고전을 면치 못한다는 평범한 진리를 체험한 하루였다고 해야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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