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시:2008년 1월 27일 당일산행
총거리:웅석봉-진부령(785km)
걸어온길:웅석봉-문장대(304.49km)
남은거리:문장대-진부령(480.51km)
날씨:쾌청함
도상거리:약8km
실거리:약 18km
산행시간:약 7시간 정도
고도표:
지형도:
5:30분
성서 홈플러스앞 조명등아래 일주일만에 만난 산우들과 반가운 인사가 오간다.
오늘은 백씨가문 여러 선배님들이 산행에 동참키위해 애마에 동승하셨다.
김대장님은 9차 백종회 회원들과 한라산 동반중이셔서 동행하지 못하신단다.
조대장님의 말씀에 의하면 한라산이 비록 백두대간상에 위치산 산은 아니지만 백두산과 더불어 민족의 영산으로 상징적인 의미가 크기에 차후 정기산행을 위한 답사의 의미를 가지고 등반중이시란다.
7:55분
갈령을 지나 쉰섬을 가는 중간 산허리에서 시작된 접속은 포장도로아래 비탈면으로 내려서야 한다.
맞은편 형제봉 피앗재 방향 마루금이 선명하게 보일만큼 날씨는 쾌청하고 온산에 흰눈이 덮여있어 아마도 이번 산행은 설국으로의 산행이 될 것 같다.
첫걸음 부터 눈쌓인 비탈면을 내려가려하니 종아리에 신경이 곤두서고 앞서 출발한 산우들은 벌써 농로에 진입한다.
작은 개울을 건너 피앗재를 향한 계곡에 진입하면서 눈덮인 너덜지대를 지나고 산죽이 우거진 가파른 경사면에선 산행이 지채되어 줄지어 기다려야 할 만큼 쉽지 않은 초반산행이 진행된다.
숲속여기저기에 야생동물들의 발자국이 생존을 위한 몸부림처럼 선명하고 8차9차 선배들의 흔적(시그날)은 친근함으로 다가왔다.
8:50분
예상보다 20분가량 늦은 시각에 피앗재에 도착한 일행은 아이젠을 비롯한 월동장비를 점검하며 약간의 휴식을 취한후 대간 마루금 밟기에 들어간다.
이번구간은 한반도 12종산중의 하나이며 대한 8경에 속하는 빼어난 구간을 관통한다는 기대와 얼어붙은 개구멍 통과라는 우려를 동시에 안고 첫번째 난관인 천황봉을 향한 오름이 이어진다.
눈이몰려 쌓인곳은 무릎높이 보다 더 높게 수북한 곳도 있었지만 대체적으로 산행에 무리가 따르는 정도는 아니었다.
청명하고 온화한 날씨덕에 외투는 벗어 배낭에 매달고 티셔츠 차림 이었지만 구슬땀은 구렛나루를 타고 내린다.
667봉을 지나고 725봉에선 천왕봉이 선명하게 보이고 산우들은 벌나비가 꽃을향해 날아가듯이 뽀드득 뽀드득 발밑의 부서짐을 즐긴다.
가파른 북사면에선 아예 엉덩이를 깔고 미끄럼을 타는 사람도 있고 몰레 눈 을 집어 앞사람목덜미에 슬쩍넣는 장난을 치기도 하며 소풍나온 아이들같은 모습도 보였다.
천황봉 수직암벽에 매달린 거대한 고드름을 보며 지난주의 동장군이 얼마나 매서웠을까 짐작이 간다.
옹골찬 된비알에 붙어 천황봉을 오를땐 거친 날숨들숨을 반복해야 했지만 한발자국씩 오를때 마다 펼쳐지는 조망과 정상의 희열을 기대하며 수고로움을 즐긴다.
정상이 가까워 지면서 오늘산행에서 2%부족하다 싶었던 상고대까지 순백의 투명한 화려함으로 치장을 하고 마중을 나오니 감격의 환희는 절정에 달한다.
천황봉에서 둘러보는 빼어난 조망은 일망무제(一望無際)로다.
정상에서 살펴보는 산세는 아둔한 범부의 눈에도 산자 분수령(山自分水嶺)의 이치를 확인할 수 있는 산맥의 흐름이 이어진다.
산맥의 흐름을 보면 삼파수(三波水)의 이치는 확연해 진다.
동으로 낙동강, 서로한강, 남으론 금강으로 물줄기의 갈길이 정해지는 이곳의 지리적 중요함은 속리산의 주봉(主峰)으로서의 위치를 가늠케한다.
이곳에서 분기한 한남금북정맥은 말티고개~선도산~청주상당산성~구좌산~보현산~칠장산까지 147.5km에 이르며 칠장산에서 한남정맥과 금북정맥으로 갈리어 한남정맥은 인천 문수산에 이르고 금북정맥은 태안 안흥진 앞바다에 발을 담근다.
백두대간 완주에 이어 정맥종주때 어느날인가 이자리에 다시 설 수 있기에 다음을 기약하며 문장대 방향으로 발길을 돌린다.
조대장님 께서 12:30분경 까지 문장대에 도착하도록 일정을 안배하라고 하셨거늘 벌써 11:30분이 지나고 시장기 마져 느껴진다.
석문을 지나 비로봉, 입석대, 신선대, 문수봉 절벽으로 이어지는 이 구간은 지날때 마다 느끼지만 빼어난 절경에 곳곳에 발목이잡힌다.
남성적인 웅장함과 그윽하고 부드러운면을 두루갖춘 바위들은 포근한 눈을 덮고있어 태고의 신비를 간직한 예술의 경지를 넘나들고있다.
또한 날씨마저 쾌청하여 바위 뒷편으로 먼발치의 산하가 완벽한 배경으로 받쳐주니 속세를 떠나 홀연히 선경의 하늘정원을 거니는 이 순간은 시간의 굴레에서 비켜있고싶다.
속리산의 배경은 8이란 숫자와 뗄래야 뗄 수 없는 불가불의 관계처럼 되어있다.
이는 속리산 기슭에 있는 천년고찰 법주사(法住寺) <553년 신라 진흥왕 14년 의신조사가 창건>와 연관이 깊은 것으로 풀이된다.
불교에서는 8정도(八正道)라 하여 열반에 이르기 위한 바른실천수행을 8가지로 구분하고있다.
염주처럼 묶여있는 속리산의 8자를 풀어보면 8봉(峰), 8대(臺), 8석문(石門)으로 꼽는데 8봉은 천황봉, 비로봉, 길상봉, 문수봉, 보현봉, 관음봉, 묘봉, 수정봉이며, 8대란 문장대, 입석대, 신선대, 경업대, 배석대, 학소대, 봉황대, 산호대이고, 8석문은 내석문, 외석문, 상환석문, 상고석문, 상고외석문, 비로석문, 금강석문, 추래석문 이라고 한다.
12:20분
금강산도 식후경이라 여러산우들과 신선대에서 꿀맛같은 점심을 먹는다.
약주도 한잔 했으니 식후 나른함도 달랠겸 주변경관을 조광하며 신선의 흉내라도 내보고 싶지만 조대장님의 얼굴이 떠올라 석경이와 둘이서 먼저 자리를 털고 일어선다.
문장대 위에 사람의 모습까지 보일정도로 가까워 지고있다.
우주를 향해 힘차게 솟아있는 모습은 볼때마다 경이롭다.
83년도 쯤에 친구들과 처음 문장대를 보았을때 그 신비로움은 오랜시간이 지나도 잊혀지지 않는 장면이었다.
암봉의 아랫부분은 구름에 가려져있고 솟아오른 상층부의 바윗돌만 구름위에 떠있는듯한 신비스런 선계의 모습 그대로였다.
13:30분
문장대 휴게소 앞을 지나치는데 공원 관리소 직원 인듯한 2명이 헬기장을 지나 암릉구간으로 재빠르게 내려가는 사람들을 보며 신경을 날카롭게 곤두세우고 험한말을 푸념하듯이 내뱉는다.
잠시 후면 나도 저곳을 지나야 하는데 뭔가 심사치 않은 분위기가 느껴진다.
마침 휴게소 부근에 대기하고 계시던 조대장님을 만나 조금전의 상황을 말씀드렸더니 상황을 알고 계시니 일단 진입하지말고 대기하라신다.
그냥 기다리기 무료하여 일단 문장대 철계단을 오른다.
사방천지 조망은 빼어난데 왠지 시선은 자꾸만 내가 가야할 저능선 암릉구간으로 고정된다.
선두조 산우들은 기암괴석이 늘어선 마루금 어느 바위틈을 열심히 지나고 있을텐데 ...
하늘위에서 바라만 보는 심정은 그저 안타깝고 아쉬울 따름이다.
차라리 안개라도 끼던지 구름이라도 덮혀 보이지 않았으면 미련이라도 없을것을 왜이다지도 날씨는 쾌청한가?
가파른 철계단을 내려와 사진을 찍으며 대기하는 사이 조대장님은 여기저기 전화를 하시고 그 사이 뒤따라온 산우들이 삼삼오오 모여들기 시작한다.
시간이 남아 문장대 표지석뒷면에 새겨진 고운 최치원(崔致遠)의 시를 읊조려본다.
(道不遠人 人遠道 山非離俗 俗離山)
도는 사람을 멀리하지 않는데
사람은 도를 멀리하려하고
산은 세상을 멀리하지 않는데
세상이 산을 멀리하는구나.
성현의 깊은 뜻을 무지랭이같은 산꾼이 어찌 깨우쳐 헤아릴 수 있을까만은 어떤 계시같은 무게가 느껴지고 지금처해진 현실과 출입금지 안내판이 뒤엉키며 커다란 철대문처럼 견고하게 느껴진다.
대간돌이 들은 백두대간 개구멍을 멀리하지 하지 않으려는데
국록을 먹는자는 대간마루금을 막아서고
산은 대간돌이 들을 떠나지 않는데
국법을 집행하는자들은 산을 떠나라 하는구나.
조대장님께서 계획을 수정하여 화북매표소 방향으로 하산하라고 하신다.
이미 진입한 선두조에게는 입석바위 가기전에 우측으로 탈출 하라고 전화연락을 하시며 혼자서 여러모로 애쓰시는 모습에 도움이 되드리지는 못하는 현실이 미안스럽다.
한사람이라도 빨리 지시에 따르는 것이 돕는길인 것 같아 서둘러 화북매표소 방향으로 하산한다.
약 25년만에 뜻하지 않게 다시 걷게된 구간이다 이참에 이련한 젊은날의 추억이나 들추어 볼 심산으로 추억의 파편을 찾아 여기저기 눈길주어 살펴본다.
그동안 계단도 만들어지고 계곡엔 다리도 생겨나는 등 여러곳에서 등산로 정비가 되어 있었지만 게곡 본래의 모습은 변치 않은 듯 하다.
가파른 경사로가 거의 끝날 때 쯤 우측계곡 인적이 뜸한곳에 위치한 오송폭포를 찾았다
.한여름의 불볕더위도 매미들의 고성방가도 모두 얼음장 속에 가둬버리고
빙벽과 낙수가 한몸인듯 아닌듯 어우러 져 산상의 절경과는 또다른 멋스러움을 연출한다.
15:04분
화북매표소 주차장에 도착하니 선두조는 아직 보이질 않는다.
혹시나 중간 탈출로 상황이 여의치 않은 건 아닐까 걱정도 되지만 산타기를 밥먹듯이 하는 분들이니 잘 헤치고 하산 하시겠지라며 위안해 본다.
1시간쯤 후 모든산우들이 무사히 도착을하고 비록 예정된구간 완주는 못하였지만 따끈한 배추국밥과 하산주를 기울이고 속리산을 떠난다.
백두대간 시작후 한구간을 완주하지 못하고 귀가하기는 처음인지라 다소 싱숭생숭한 면도 없지 않으나 이또한 대장정 중에 일어 날 수 있는 숱한 일중의 하나가 아닐까?
어쩌면 지금까지 순탄하게 진행된 산행이 비정상일지도 모른다.
여하턴 북진이라는 대원칙을 굳게 믿고 오늘에 불미스런 일은 대나무가 성장하기 위해서 생겨나는 마디쯤으로 생각하며 21구간 산행을 마무리 한다.
'산행후기 > 백두대간 산행후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 백두대간 제 22구간:늘재-청화산-밀재-대야산-촛대재-버리미기재 (0) | 2008.02.24 |
|---|---|
| 백두대간 제21-2구간 : (21구간 보충산행)문장대-밤티재-늘재 (0) | 2008.02.12 |
| 백두대간 제 20구간:화령재-봉황산-비재-형제봉-피앗재 (0) | 2008.01.27 |
| 백두대간 제19구간:개머리재-지기재-신의터재-윤지미산-화령재 (0) | 2008.01.12 |
| 백두대간 제 18구간 :큰재-회룡재-개터재-백학산-개머리재 (0) | 2007.12.2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