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행후기/백두대간 산행후기

백두대간 제11구간:중재-백운산-영취산-민령-육십령

함종대 2007. 9. 8. 22:55

 일시 : 2007년 9월2일 당일산행

총거리 : 웅석봉-진부령(785km)

걸어온길 : 웅석봉-육십령(139.25km)

남은거리 : 육십령-진부령(645.75km)

등반시간 : 약 8시간

고도표:

 지형도:

 

 

 

 빗방울이 연일 하염없이 내린다.

꽃은 떨어지고 녹음은 흘러내릴듯 푸르른데 성급한 열매들은 벌써 자리를 잡기 시작합니다.

방수장비를 준비하지 않고 대간길에 나섰는데 다행히 잔뜩 흐리기만 할뿐 비는 내리지 않는다.

아마도 산우님들이 완벽하게 방수장비를 챙겨오신 덕분에 하늘이 감동하신 탓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중기마을에서 중재로 오르는 접속구간 10차 산행하산길의 뙤약볕과는 너무나 다르게 흙길위로 개울물이 흘러내리고 풀잎마다 건드리면 주르륵 흘러 내릴듯 잔득 수분을 머금고 있는 가운데 산우들이 잰걸음으로 중재를 향하고 있다.

 줄기에 작은 낚시바늘 같은 가시가 돋혀있는 며느리 밑씻개 라는 꽃이다.

경상북도 안동군 풍산읍 상리에 전해 내려오는 구전에 의하면 어느날 시어미가 밭을 메다가 갑자기 뒤가 마려워 밭두렁 근처에서 뒤를 보고 뒷마무리를 하려고 어린 호박잎을 뜯었는데 손이 따끔 거려서 살펴보니 줄기와 잎사귀 뒷면에 가시가 촘촘히 박힌 식물이 호박잎과 함께 딸려온 것 이었다.

평소 며느리를 달갑지 않게 생각 하던 시어미는

"에잇, 이놈의 풀. 며느리년 똥눌때나 걸려들 것이지..."

라는데서 이름이 유래 했다는 설이 있답니다.

화장지가 없던시절 아무리 며느리가 밉기로서니 저런 식물로 화장지를 대용하여 뒷처리를 하라고 했는지 너무 심한 발상이 아닐까.

따지고 보면 본인의 딸도 시집가면 다 남의집 며느리 인것을...

비슷한 꽃으로 고마리가 있는데 고마리는 가시가 없다.

 

 중재에서 중고개재로 향하는 초입에서 만난 버섯이다.

우선 너무나 큰 덩치에 눈이 번쩍 뜨이고 순백의 도도한 자태에 돌리려던 발길을 멈춰 다시한번 뒤돌아 본다.

 물기를 잔뜩 머금은 노란 물봉선이 청초하기 그지없다.

물봉선은 대간 길뿐 아니라 전국토 여러곳에서 습기가 있는곳이면 만날수 있는 이웃같은 친숙한 꽃이다.

하지만 노란물봉선은 상대적으로 개체수가 많지 않아 이따금씩 만날수 있는데 희소성의 가치때문인지 반가움이 앞선다.

 고도표에 그려진 그림처럼 백운산을 오르기 위해서는 한바탕 거친숨을 토해내야할듯 하다.

어쩌다보니 앞뒤로 동행들이 보이질 않고 소연이와 단둘이 걷게 되었는데 기린을 닮은 큰 키의 가을 꽃 마타리가 흔들흔들 바람에 온몸을 맡기고 한껏 여유를 부린다.

제키보다 훨씬큰키에 소연이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관심을 보이기에 마타리 꽃이라고 이름을 알려주고  사진한장 찍어주었다.

마타리의 꽃말은 "미인"  , 잴수없는 사랑 .

우리말로 "강양취" , "가양취" 등으로 불리기도 한다.

"취"라는 글자가 붙는 식물은 대부분 식용할수 있는데, 이것도 어린잎을 식용할 수 있다.

뿌리는 장썩은 냄새가 난다하여 속명 패장 이라고도 하는데, 소염, 어혈,또는 고름빼는 약으로 사용한다.

황순원의 동화 "소나기"에도 등장하는 꽃이다.

"양산같이 생긴 노란꽃이 뭐지?"

"마타리꽃."

소녀는 마타리꽃을 양산받듯이 해 보인다.

약간 상기된 얼굴에 살포시 보조개를 떠올리며 다시 소년은 꽃 한웅큼을 꺽어왔다.

 국화과의 여러해 살이 풀로 국내에서만 자생하는 희기한 식물로 깊은 산이나 풀밭에 자라며 개체수가 많지 않다.

지리산 정령치에서 처음 발견되었다고 하여 정영 엉겅퀴라고 하는 설과 엉겅퀴꽃을 닮긴 하였지만 색깔이 흰색에 가까움으로 정녕 이것이 엉겅퀴란 말인가... 라는 말에서 얻어진 이름이라는 설이 있는 재미있는 녀석인데, 백운봉을 오르기전 무덤 2기가 있는 곳에서 서성이는 녀석을 순간포착 하였다.

 

 (10:43분)

힘들어하는 소연이의 손을 잡고 이끌다 시피 하며 한발두발 오르다 보니 희뿌연 안개속에 앞이확 트이며 무덤이 나타나고 저멀리 백운산 정상에서 석경이가 반갑게 소리친다.

흐린 날씨탓에 정상에서 누리는 조망을 포기할수 밖에 없는 현실이 안타깝긴 했지만, 사과한쪽씩을 나누어 먹으며 힘든 구간을 무사히 올라왔다는 것을 위로삼고 영취산에서는 혹시나 하는 기대를 품고 전진한다.

 선바위 고개를 지나 영취산으로 가는 길은 탐방로를 따라 산죽들을 말끔히 정리해서 걷기에는 좋았으나, 뭔가 공원길같은 자연 스럽지 못한 애매한 기분이 들었다.

 

 

 (12:40)

우기가 계속 이어지고 가을 내음이 나면서 부터 각종 버섯들이 야생화들과 주도권 다툼을 하듯이 화려하고 기이한 모습으로 대간길 여기저기서 자신의 존재를 뽐내고 있었다.

덕운봉을 지나면서 훌쩍 키가커버린 억새밭길 걸으며 간간히 얼굴을 내미는 마타리, 산비장이, 참취나물, 산초 등과 스치듯 눈인사를 하고서 깃대봉에 도착하니 앞서거니 뒷서거니하던 후미조 여러분들이 휴식을 취하고 계셨다.

이제 다왔다는 안도감에 남은 음식들도 나눠먹고 기념사진을 찍는 모습에서도 여유로운 분위기가 감지되었다.

 깃대봉에 다다를 무렵부터 소연이의 체력이 급격히 떨어지기 시작하더니 깃대봉셈터를 지나면서 부터 훌쩍훌쩍 울먹인다.

지난여름 체력관리를 소홀히 한대다 짧은 구간을 몇구간 지나다 보니 길어지는 구간에 대한 적응이 덜 된듯 하다.

도움이 될까 하여 손을 잡고 이끌어 주었는데 꼭잡은 작은 손바닥에 촉촉히 땀이 배어난다.

어린 나이에 멋모르고 어른들의 부추김에 따라나선 대간길이 힘겹고 벅차다는걸 알기에 안쓰럽기도 하고 내가지금 이 아이를 너무 혹사시키는것은 아닌지 곱씹어본다.

오늘 백두대간 마루금에 흘린 땀방울과 눈물이 알알이 영글어 대간길에 만난 어떤 나무보다 크고 대간길에 올랐던 어떤 봉우리보다 우뚝 솟은 큰 산을 작은 가슴속에 담아 낼수 있기를 바라며 육십령에 내려선다.

 

 (16:35)

육십령 휴게소뜰앞 조롱박 넝쿨아래 우리와 끄트머리 다툼을 했던 김학량님 부부와일행들이 하산주를 기울이고 작은 개울에선 남자분들이 과감하게 알탕을 즐기신다.

그옛날 신라와 백제의 국경이기도 했던 이곳에 오늘날 알록달록 등산복을 입은 대원들이 손에손에 뾰족한 쇠꼬챙이 챙겨들고 줄줄이 산에서 내려와 주막을 점령하고 생더덕주에다 탁배기까지 닥치는 대로 동을 내고 여새를몰아 거침없이 개울까지 점령하여 알탕을 즐기는 위풍당당함에 산적들은 산속으로 줄행랑을 쳤는지 흔적조차없다.

 

어른들은 다들 잘 알고있는 내용이겠지만, 학생대원들을 위해 논개에 대한 내용들을 옮겨본다.

우선 논개의 태생부터 살펴보면 논개는 1574년 무령 고개 분수령 남쪽 대곡리 주촌 마을에서 주문달의 딸로 태어났다.

우연의 일치인지, 하늘의 개시인지 논개는 갑술년(甲戌年), 갑술월(甲戌月), 갑술일(甲戌日), 갑술시(甲戌時) 즉  개해, 개월, 개일, 개시 에 태어나 "낳다"의 이지방 방언인 "놓다"와 "술(戌)" 의 우리말 표현 개를 합한 "개를 놓다" 라는 뜻이다.

어린시절 남달리 영특하였던 논개는 13세때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고 숙부 주문달이 마을의 백치불구에게 강제로 논 세마지기와 엽전삼백냥 당백포 세필을 받고 시집 보내려 하자 논개모녀가 친정집으로 도망가고 백치불구의 아버지 김풍헌이 이들을 관아에 고발했고 숙부 는 모든죄를 논개모녀에게 씌우려고 모녀를 장수 현감에게 소장을 올렸다.

당시 장수현감 최경회는 이들의 억울한 사정을 헤아려 무죄판결을 내렸으며, 오갈데 없던 모녀는 마침 와병중이던 현감부인의 병 수발을 하게되었고, 현감부인이 세상을 하직하면서 논개와 최경회는 부부연을 맺게 된다.

이후 임진왜란이 일어나 경상우병사의 직책을 맡게된 남편 최경회는 진주성 싸움에서 백성들과 군사들이 힘을 합쳐 싸웠으나, 성을 빼았기고,

"남강물 파도가 마르지 않으면, 우리혼도 죽지 않으리"

라는 시를 남긴채 남강물에 뛰어들어 자결하였다.

이에 복수를 결심한 논개는 기생으로 변장하고 외군들의 승전 축하연에 들어가 기회를 옅보다가 외국에서 신의 칼이라는 별명을 가진 외군장수 게야무라 로쿠스케 를 껴안고 넘실대는 남강물에 뛰어들어 거룩한 자결을 했다.

현재 최경회 장군과 논개의 합장묘는 육십령에서 동남쪽으로 10리쯤 떨어진 함양 서상면 금당리 방지마을 탑시기골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