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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두대간 제39 구간 :구룡령-갈전곡봉-쇠나드리-조침령

함종대 2008. 9. 26. 13:32

 

백두대간 제39구간:구룡령-갈전곡봉-쇠나드리-조침령

일시:2008년 9월20~ 21일   무박2일 산행

총거리:웅석봉-진부령(785km)

걸어온길:웅석봉-조침령(703.2km)

남은거리:조침령-진부령(81.8km)

도상거리:약20.8km

실거리:약22km

산행시간:본인기준 약11시간( 백풍회 꼴찌)

날씨:맑음

 

추석을 지난지 일주일 되었지만 낮 기온이 30도를 웃도는 여름 날씨가 이어지고 있다.

오랫동안 비가 내리지 않아 대지가 메마르고 농사에 지장이 있다고 하더니 주말에 단비가

내린다고 하는데 백풍회는 복도 많다.

이제까지 가물다가 왜 하필 백풍회 산행에 맞춰서.....

20일 저녁 칠곡IC에서 애마를 기다리는데 소나기가 시원하게 내려 황급히 잣나무밑으로

피신하여 물에 빠진 생쥐 몰골로 투덜댄다.

 "누가 기우제 올리고 싶은 사람 있으면 백풍회에 연락하라고해"^^

청승맞은  기다림에 스스로를 위로하며 외는 주문..."대문밖을 나섰으니 한구간 했다" 

추석 뒤에 만남인지라 산우님들 얼굴이 반지르르하니 신수가 훤한걸 보니 복을 듬뿍 받으셨나보다. 

대장님의 산행안내가 이어지는데 고도표를 보니 이번구간은 잔 펀치에 녹초 되는 날 이구나 싶다. 33구간에서 겁없이 촐랑 대다가 잔펀치에 혼쭐이난 이후 부터 잔펀치 노이로제 라고나 할까? 잔펀치는 겁난다.

02시56분 구룡령 출발

 

 

산행준비 하라는 안내에 바깥 동정부터 살펴보니 일단은 비가 내리지 않는다.

남부 지방과 서해안 지방에 비가 내리고 영동지방에는 비가 내리지 않을 거라는 예보가 이번엔 적중 하나 보다. 

구룡령 표지석과 동물 이동 통로 사이로 시작되는  들머리엔 이슬이 내려 풀잎마다 반들거리고 제법 가파른 오름이 이어 지는가 싶더니 어느새 내리막이다.

산들 바람이 적당히 불어 오고 머리위엔 달빛까지 동행 하니 산행하기엔 더 없이 좋은 날씨다. 게다가 오늘은 산행속도가 비교적 느려서 후미에서도 나름 여유를 가지고 낭만적인 분위기에 빠져본다.

오르내림이 잦으니까 산을 넘었는지 언덕을 넘었는지 구분도 안되고  야간 산행의 특성상 주변 경관을 볼 수 없으니 지형의 형태가 파악되지 않고 먼 골짜기 아래 반짝이는 불빛이 이따금씩 나타 났다가 사라지곤한다.

 04시03 분 구룡령 옛길

 

약 30분 정도 산행후 구룡령 옛길 표지석이 있는곳을 지나 04시00분 1121봉 으로 추정되는곳 에서 첫 휴식시간 이 주어졌다.

해뜨기 전 에만 볼수 있는 휀님들 모습을 담아 보았다. 이젠 뒷모습만 봐도 누군지 금방 구분이 되고 가까워진 만큼 주고받는 야그들도 재밋다.

해가뜨고 나면 끄트머리만 남겨두고 정처없이 떠나는 야속한님들 이지만 종점에 이르면 반가이 맞이하여 하산주  건네 주시니 미워 할수 없는 산님들 이다.

 

39구간 최고봉인 구룡령을 향한 마루금이 서서히 기지개를 켜며 고도를 높여 간다'

신갈나무와 산죽이 아래위로 적절한 조화를 이루고 있는 등로는 초반 체력의 여유도 있고 그다지 가파른 느낌은 아니었기에 이런저런 예기를 주고 받으며 오를수 있었다.

 

05시02분 갈전곡봉

 

 

참나무를 베어서 만든 통나무 쉼터가 있는 갈전곡봉(葛田谷峰) 에서 두번째 휴식을 하며 간단한 간식을 먹었다.시간이 5시를 넘고 있으니 아마도 단체휴식은 이번이 끝 이리라 짐작 되는데 지형도를 보는 지완이 형제의 모습에 제법 사내답고 진지함이 보인다.

약 일년반 동안의 백두대간 종주 에서 가장 많은 변화를 보이고 있는 대원들이 학생들

이라고 생각 되는데 처음 출발은 부모님 뒷따라 다기기에 급급 했지만 이젠 독립의 조짐이 보이고 신체가 성숙한 만큼 내면의 깊이도 산을 닮아 가길 바래본다. 

갈천곡봉  우측 품 안에 갈천마을 이 있다. 속칭 "치래" 라고 하며 자갈밭에 온가족이 의지하여 살아가던 시절 춘궁기에 양식이 부족하여 갈근(칡뿌리)으로 어렵게 연명 했다고 하여 붙여진 지명 이라고 한다. 아침가리 마을과 더불어 오지 마을의 생활상을 어려운 삶을

더듬어 보게하는 지명 이다. 

 

 

 

갈전곡봉 에서 내려 서는길은 2시 방향으로 크게 꺽이며 급경사를 이루다가 다시 10시방향으로 선회하여 로프가 설치되어 있는 내리막을 달린다.

 

6시가 가까워지면서 하늘빛이 엷어지고 산새들이 푸드덕거리며 새벽을 가르는 모습과

순백의 구절초도 어둠을 털고 나왔다.

 

 

웅크리고 있던 산들이 제 모습을 드러내고 품안에 잠들어 있던 생명들이 하루를 시작하는 모습을 보며 문득 앞서가는 동료의 뒷모습을 본다.

세간의 속박을 벗어나 하늘과 땅이 맞닿은 마루금을 밟으며 밤을 지새고 아침을 맞이하는 모습이 선하게 느껴진다.

 

09시08분 왕승골 삼거리

 

 

 

 작은 오르내림을 반복하며 잡목숲을 걷다보면 왕승골 갈림길까지 내려간다.

잘록하게 내려선 길목에 썩은 나무토막이 하얀 버섯옷을 입고 묘한 표정으로 산꾼을

바라보고 있었다. 넘어진 나무토막을 앞서간 누군가가 세워 놓은것 같다.

왕승골 삼거리에서 왼쪽 기슭에 조경동(朝耕洞)이라는 마을이 있다.

한자의 뜻에서 알 수 있듯이 아침나절에 쟁기질을 끝낼수 있는 작은 농지를 가진 마을 인데 요즘의 시각에서 보면 토속적이고 낭만적인 분위기를 느낄수도 있겠지만 과거 산골

민초들의 곤궁한 삶을 엿볼수 있으며 큰 산이 겹겹이 에워싸고 있는 강원도의 단면을 보여주는 지명이다.

 

 

노루궁뎅이 버섯 이다.

특이한 이름과 희귀한 버섯 이라는 예기는 들었지만 실물을 보는것은 처음인데 특이한 모습에서 알수 있듯이 한눈에 알아볼수 있었다.

보송보송한 모양이 노루의 궁뎅이를 닮았다 하여 붙여진 이름인데 위의 사진을 보면 웃음이 나오며 고개가 끄덕여진다.

떡갈나무,신갈나무,단풍나무 같은 활엽수의 고사목이나 썩은 부위에 매달려서 자라는데

위의 사진은 떡갈나무 고사목에 자라고 있는것을 담았다.

이름은 외설스러운 면이 있지만 효능은 타의 추종을 거부할 정도로 귀하신 몸 이라는데

항암작용이 탁월하고 활성산소를 제거하는 능력이 뛰어나 뇌 세포의 활성화를 촉진하는등 여러가지 약리 작용을 한다고 한다.

자연산은 워낙 희귀하여 산삼보다 귀하게 취급되자 농가에서 재배를 하여 상품화 시켜 유통되기도 한다.

 

 

 7시가 지나면서 아늑하고 전망좋은 명당? 마다 아침 식사를 하는 산우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모습들이 보인다. 석경이 녀석은 지난 구간부터 혼자 앞서 가기에 이번엔 도시락을 따로 준비해 주었더니 중위그룹 대원들과 어울려 이미 아침식사를 끝냈다.

 웅석봉을 넘을때 혼자 생각으로  녀석이 대간종주가 끝나기전에 독립을 할수 있을까

하고 생각 했었는데 막바지에 와서 조금씩 변화의 조짐이 보인다.

아직은 생각없이 빨리 하산 하는데 만 목적을 두는것 같아 우보 산행을 하며 좀더 많은것을 보고 본만큼 느끼고자 하는 나와는 생각에 차이가 있는것 같지만 나의 생각을 강요 하거나 주입 시키고 싶지는 않다.

앞으로 살아 가면서 산에 오를수 있는 기회가 나 보다는 훨씬 많을테니까 스스로 사고의 깊이와 넓이를 개척해 가기를 바랄뿐이다.

지금은 독립 자체에 의미를 두고 무리한 요구는 하고싶지 않다. 

 

 

이번구간엔 야생화가 흔치 않은데고려엉겅퀴(위 사진)곤드레나물 이라고도 하는며 뿌리는 우엉뿌리 처럼 생겨서 길게 아래로 자란다. 뿌리를 된장이나 간장에 담아서 장아찌를 만들면 아삭 거리는 맛이 일품이다.도시락 반찬으로 싸서 다니던 기억은 이제 옛날 일이 되었다.

 지난 구간에 흔하게 보이던 금강초롱 (아래사진)은 겨우 몇 송이만 보였다.

 

10시49분 연가리골 안부 

 

3재불입지처(三災不入之處)라는3둔 4가리 마을중 연가리골 샘터로 이어지는 갈림길 표지목이다.

 

 

 

이번구간은 특징이 없는듯 하면서 은근히 많은 특징이 있는구간인데 게중에 하나 표지목은 있으나 현위치에 대한 표기가 위도 경도를 숫자로만 적혀 있어서 개인적으로 계측기를

휴대하지 않은 사람들은 현위치 파악에 상당한 애로를 격어야 했다.

특히나 일명 잔펀치로 불리는 무명의 봉우리들 을 여러차례 넘다보면 여기가 저기같고 저기가 여기같아 자꾸만 지형도와 고도표를 펼쳐 보게된다.

김규환님! 두번 빠지고 고도표 잔잔한 구간에 도전 했는데 영 헷갈리는 모양이다.^^

고도표를 외우다시피하던 석경이 녀석도 앞서가고 없으니 한고개 넘을때마다 지도를

펼쳐 보지만 아리송 하고 머리에 쥐가 나려한다.^^

 

11시27분1100봉 

 

이번구간의 또다른 특징은 고비마다 쉼터를 조성해 놓은점 이다. 굵은 참나무를 반으로 갈라서 만들어 놓은 의자는 잠깐씩 쉬면서 여독을 풀기에 훌륭한 역할을 하였다.

또하나 산죽이 상당히 광범위하게 자리잡고 있었는데 몇 등성이 마다 제각기 다른종이 자라고 있는 것을 볼수 있었다. 산죽의 키가 어깨높이 까지 자라는종이 있기도 하였고 허리만큼 자라는종 종아리 높이만큼 자라는종 등 다양한 산죽들이 신갈나무 떡갈나무류와 상하 완벽에 가까운 조화를 이루며 생태계가 잘 보존되어 있었다.

 

 

 

 1100봉을 지나 이어지는 내리막엔 토사 유출을 방지하기 위하여 자연석을 깔아 놓았는데

산행 후반부에 만나는 너덜길은 관절에 충격이 증가 되기에 반갑지 않다.

생태계 보존에는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지 모르겠으나 장거리 산행을 하는 입장에서 보면다른방법은 없는지 연구 해볼 필요성이 있을것 같다.

 

 

늦더위가 이어지는 가운데 계절은 차츰 영글어 가고 있었다. 

토실토실 익은 도토리가 투둑거리며 떨어 지기도 하고 한켠에선 단풍이 곱게 물들어 가며

저마다 알찬 결실을 준비하고 있었다. 

어쩌면 지루하게 느껴질수 있고 평범해 보이는 산행에서 계절의 변화를 살며시 들추어 보면서 걷는 재미는 신비스럽고 감탄 스럽다.

얼핏보면 움직임이 없는듯 보이지만 남몰래 얼마나 부단한 노력을 하고 있었는지 그들이

노력한 흔적을 보면 산행의 고단함을 쉽사리 말하기가 쑥스럽기도 하고.....

 

 

 

넘고 또 넘고 기운은 빠지고 지도를 아무리 들여다 봐도 뾰족한 수 는없고생연님의 꿀맛같은 사과를 먹고 넘고 또넘어 다시봐도 헷갈리는 봉우리...^^*

난 처음부터 지도 보는것을 포기 하고 그냥 하산 시간을 추정하여 무작정 걷는쪽을 택 하였다. 길을 잘못 들어 알바를 하지만 않는다면 그편이 마음 편한것같다.

 

 

 

  천남성의 열매 인데 화려한 색상과 특이한 모양 때문에 눈길을 끈다.

위로 부터 익은 열매, 덜익은 열매,포(꽃과같은 역할을 하지만 꽃이라고 하지않고 포 라고한다) 열매 줄기 뿌리 모두 강력한 독성이 있으며알뿌리를 제한적으로 약제로 쓰지만 전문가 가 아니라면 사용하지 말아야한다.

천남성에 관하여  30구간 산행후기 에서 소개한바 있다.

 

1246분 바람불이 삼거리(쇠나드리고개)

 

 

 

 석경이 녀석 도착했다는 전화를 하면서 쇠나들이를 지나고도 한시간쯤 더 걸어가야 한다는데 우린 아직 쇠나들이 까지도 못 왔으니 한편 부럽기도 하고 기운이 빠지기도 한다.

12시를 넘기면서 시장기를 느껴 마지막 간식을 하고  약20분쯤 지날무렵  멀리 조침령으로 이어지는 도로가 보이자 산행의 끝이 가까워 지는듯하여 끄트머리 대원들 용기를내어 속도를 내 본다.

가파른 내리막을 내려서 잘록한 지점에 설치된 표지목 기둥에 자유인8기팀이 묶어놓은 쇠나들이 글자가 적힌 코팅 종이가 있고  윗부분 에는 바람불이 방향을 표시한 화살표 가 있었다.

봄에는 땅을 메마르게 하는 흙바람 여름에는 폭풍우를 몰고오는 비바람 가을에는 억새를 춤추게하는 낙엽바람 겨울에는 눈보라섞인 칼바람이 몰아쳐 묶어놓은 소가 날려 간다고 해서 바람불이 라고 불리게 되었다는데 허풍이 좀센것같다. 

 

예전에 인근에서 많은 소를 키웠다고 하니 소가 드나들던 고개라는 �과 바람이 세다는

지역적 특징이 적절히 섞여서 과장된 구전이 생겨난것이 아닌가 생각해보았다

후반부 마지막 힘을내어 820봉을 오르는데 한낮의 막바지 더위가 구슬같은 땀방울을 빼앗아 간다.

조용한 산중에 김대장님의 전화가 날아들고 토종닭 백숙 생각도 난다.

 

나뭇잎 사이로 스며든 햇살을 받은 자작나무의 흰껍질이 더욱 희게 보인다.

자작나무는 껍질 줄기 뿌리를 약재로 쓰기도 하지만 하얀 껍질에는 정유성분이 들어있어

방수역할을 하므로 수백년이 지나도 썩지않는다.

신라 천마총 에서 출토된 그림의 재료가 자작나무 껍질이고 임금이 타고다니는 말 안장 등받이 나무에도 방수 목적과 장식을 위하여 자작나무 껍질을 여러겹 덧붙인 유물이 발견되기도 하였다.

고향에서는 자작나무를 물나무 라고 부르는데 봄철에 고로쇠 나무처럼 물을 채취할수 있고 껍질 줄기 뿌리는 약재로 쓰이며 황달 신장염 폐결핵 시력회복등에 좋다고 한다.

 이제 산행의 끝이 보이고마루같은 목책길을 지나면 조침령 비포장 도로가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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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침령 표지석을 보기위하여 베낭을 내려두고 걷는 비포장 도로에는 쑥부쟁이 개미취 꽃향유 고들빼기 같은 야생화들이 화원을 이루어 39구간 완주를 축하 하고 있었다.

비록 끄트머리로 내려 왔지만 야생화의 화려한 환영을 받고보니 조금은 자랑 스럽기도

하고 한낮의 땡볕 아래지만 낭만 이랄까 사알짝 마음이 바람을 탄다.

 

조침령 비포장 도로는1983~84년 3군단 공병여단이21km 구간을 개설 했다고 적혀있다.

인제군 기린면 진동리와 양양군 서면 서림을  넘나드는 길을 5공화국 시절 군인들이 개설 했다고 하니까 생각나는 말이 있다.

"인제가면 언제오나 원통해서 못살겟네"

형님이 원통에서 병영생활을 할때 들려준 말인데 강원도 전방에 배치된데 대한 원망과

두려움 서러움이 함축된 말로서 인제군은 그말의 근원지 라고 할수 있다.

지금의 비포장 도로는 군사작전을 위하여 생겨난 도로이며 옛날 소금장수와 보부상들이 넘나들던 고갯길은 다른길 이란다.

세월의 흐름과 사람들의 필요에 따라 교통로의 역사도 변하여 조침령 터널이 개통되면서 군인들의 구슬땀으로 만들어진 도로는 한적한 꽃길로 변했다.

 

鳥寢嶺 은 "새도 자고넘는 고개" 라는정겨운 단어로 풀이가 되는데 차량이 웅웅거리며  먼지를 일으키고 오르내리는 번잡함 보다는 야생화 향기 그윽하고 적막한 느낌마져 드는 지금이 지명과 더잘 어울린다고 생각한다.

14시02분 하산 

 

표지석 앞에서 기념사진 한장 남기고 꽃길을 굽이돌아 내려 개울에 발을 담그니 오싹하게

찬기운이 전해 오지만 상쾌하다. 하산 지점에 알탕하기에 좋은 장소가 있다고 했지만

오래 기다린 산우들보기에 알탕까지 즐기기엔 체면없는 행동인듯 싶어 간단히 땀을 씻고

내려가는길에 긴대장님 께서 백구를 앞 세우고 반겨 맞아주셨다.

 

 

 

 

 

진동리에 있는 나무꾼과 선녀집 에서 마련한 한방백숙에 각자 준비해온 진귀한? 알콜이

만나자 모두들 즐겁고 화기애애한 분위기에 빠져든다.

기분같아선 좀더 여흥을 즐기고 싶지만 갈길이 멀고 기다리는 가족이 있으니 적당할때

일어나 본분으로 돌아 가야하는게 순리 이기에 상기된 기분으로 백구의 배웅을 받으며 15시쯤에 대구로 향했다.